[기밀문서로 본 JFK 암살의 진실] – 단독범행은 거짓이었다
글 소개문 (요약 소개)
1963년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JFK)의 암살 사건은 수십 년간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기밀 해제된 수천 건의 정보기관 문서를 통해 그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CIA, FBI 등 주요 정보기관에서 공개한 문서를 기반으로, 오스월드 단독 범행설의 허구, 제3의 총격수 정황, 사건 은폐 배후, 그리고 가장 유력한 암살 세력까지 꼼꼼히 분석한 보고서입니다. 단순 음모론이 아닌, 기밀 문서에 기반한 실체적 접근을 통해 JFK 암살의 본질을 파헤칩니다.
📚 글 작성 방식 및 출처 안내
- 본문은 2025년 3월까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기밀 해제된 JFK 암살 관련 문서를 분석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각 문서의 내용은 미국 언론 보도(AP, ABC, CNN), HSCA 공식 보고서, 그리고 CIA/FBI 내부 문건을 기반으로 객관적 요약 및 해설하였습니다.
- 단순 음모론을 배제하고, 공개된 실제 기록에 기반한 정리와 해석만을 다루었습니다.
- 전문적인 연구 관점을 바탕으로 내용을 재구성하였으며, 추론이 필요한 경우에도 반드시 문서상의 정황과 일치하는 범위 내에서 설명하였습니다.

1963년 11월 22일, 달라스에서 퍼레이드 중인 케네디 대통령과 퍼스트레이디 재클린 케네디. 이 직후 발생한 암살 사건의 진상은 수십 년간 논란이 지속되어 왔다.
목차
- 기밀 해제 문서 개요 및 주요 내용 – CIA, FBI, NSA, 국방부 등에서 공개된 JFK 암살 관련 문서들의 핵심 내용
- 아직 공개되지 않은 문서 현황과 은폐 이유 – 미공개 문서의 분량과 성격, 누가 왜 공개를 주저하는지 분석
- 오스월드 단독 범행설의 재검토 – 총성 음향 분석과 교과서 보관소의 ‘제3의 인물’ 정황 등을 통해 본 공식 결론의 문제점
- 미국 내 잠재적 공모 세력과 동기 – 쿠바·소련 개입설을 제외하고 CIA, 군산복합체, 마피아, 정치세력 등 국내 배후 가능성 검토
- 결론: 가장 유력한 배후 세력과 암살 동기 – 문서와 증거를 바탕으로 한 사건 배후 추정 및 그 동기
1. 기밀 해제 문서 개요 및 주요 내용
지난 수십 년간 미국 정부는 JFK 암살 관련 문서를 단계적으로 공개해 왔으며, 특히 2017년 이후 대량의 기밀자료가 해제되었습니다. 최근 2025년 3월에 이르러 대부분의 기밀 문서가 공개되어 연구자들에게 방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apnews.comcbsnews.com. 아래 표는 주요 정보기관별로 이번에 기밀 해제된 문서들의 핵심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기관 | 기밀 해제 문서의 주요 내용 |
---|---|
CIA (중앙정보국) | – 오스월드 사전 동향: CIA는 케네디 암살 수주 전 리 하비 오스월드가 멕시코시티에서 소련 및 쿠바 대사관을 방문하며 폭력적 발언을 한 정황을 포착하고도 사전에 조치를 취하지 않음apnews.comapnews.com. 특히 CIA는 오스월드가 멕시코에서 “케네디를 죽이겠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는 보고까지 입수했지만 이를 은폐하거나 공유하지 않은 정황이 드러났습니다apnews.com. 한 CIA 직원은 11월 초에 오스월드의 수상한 동태를 보고하며 우려를 표명했으나, 상부가 이를 묵살했다는 메모가 공개되어 CIA 내부의 직무 태만 또는 공모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hindustantimes.comhindustantimes.com. – 멕시코시티 도청 작전: 새 문서에는 CIA가 멕시코시티 주재 소련·쿠바 공관의 전화를 도청한 구체적 수법이 상세히 드러납니다. 예컨대 특수 잉크로 전화기에 표시를 남겨 요원들만 UV광 아래서 식별하게 하는 등 냉전기 첩보 기법이 기술되어 있는데, CIA는 이런 도청 기법 노출을 우려해 수십 년간 관련 부분을 비밀에 부쳤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6abc.com6abc.com. 이번 공개로 이 도청작전의 규모와 효율성(멕시코 정부와 공조하여 쿠바 대사관을 침투함)이 확인되었으며, 1963년 10월 오스월드가 소련 영사관 경비원과 통화한 녹취가 3건 존재한다는 점도 명백해졌습니다apnews.comapnews.com. – 쿠바 관련 비밀공작: 케네디 암살 전후로 CIA가 쿠바 정권 전복 및 카스트로 암살을 위한 비밀 공작을 지속했다는 자료도 다수 포함되었습니다. 암살 직후인 1963년 12월 9일 자 메모에서는 **“오늘 권총은 받았으나 탄약이 없다”**는 쿠바 내 공작원 메시지가 CIA 국장에게 보고되는 등apnews.com, 암살 이후에도 CIA가 쿠바에서 무장전복 시도를 꾸준히 모색했음이 드러납니다. 또한 1964년 문서에는 존슨 대통령 취임 후에도 두 명의 정보 자산이 카스트로 암살을 논의했고 CIA도 한때 이를 **“찬성했으나 RFK(로버트 케네디) 반대로 보류했다”**고 적혀 있어, 케네디 생전에도 CIA-법무부 간에 쿠바 문제를 두고 긴장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6abc.com6abc.com. – CIA 개혁 논의: 그 외에도 피그스만 침공 실패 직후인 1961년에 케네디 보좌관 아서 슐레진저 주니어가 작성한 CIA 개편 제안 메모의 삭제됐던 부분이 복원되었습니다. 해당 부분에는 “해외 주재 CIA 요원 수 과다”, “CIA 비밀활동이 국무부 역할을 침해” 등의 비판이 담겨 있어 케네디 행정부가 CIA를 견제하려 했던 움직임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cbsnews.comcbsnews.com. |
FBI (연방수사국) | – 초동 수사 및 공표 방향: FBI 국장 J. 에드거 후버가 암살 이틀 후 오스월드가 사망하자마자 “대중을 설득해 오스월드가 진범임을 확신시키기 위한 발표가 필요하다”는 지시를 내린 내부 메모가 공개되어 주목되었습니다abcnews.go.com. 후버는 오스월드가 경찰서에서 잭 루비에게 피살된 직후 요원을 보내 유언같은 자백을 받아내려 했으나 실패하자, 이러한 지시를 내렸는데, 이는 공식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FBI 수뇌부가 오스월드 단독범행 결론을 기정사실화하고자 했음을 보여줍니다abcnews.go.com. – 소련 측 반응 정보: 한편 후버 국장이 올린 다른 메모에는 암살 소식에 대한 소련 측의 반응이 담겼습니다. KGB 정보원발(發) 보고에 따르면 소련 공산당은 케네디 피살 소식에 “크게 충격받고 경악했으며” 교회 종을 울려 애도를 표했고, 소련 지도부는 이 암살을 **“극우파의 쿠데타적 행위”**로 간주했다고 합니다abcnews.go.com. 실제로 소련 측은 케네디를 오히려 협상 가능한 지도자로 선호했기 때문에 그의 죽음에 당혹했고, 새 대통령이 된 존슨에 대한 정보 수집을 즉각 지시했다고 이 문서는 전합니다abcnews.go.com. 이는 *“소련이나 쿠바가 암살 배후”*라는 일각의 의혹과 달리 소련은 미국 우익세력이 벌인 일로 여겼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 추가 발견 기록: 2023년 FBI 내부 조사로 그간 분류가 잘못되어 누락되었던 암살 관련 파일 2,400여 건을 추가 발견한 사실도 공개되었습니다apnews.com. 다만 이 신규 발견 문서들은 2025년 3월 공개된 자료에는 포함되지 않아, 추후 공개가 이루어질 예정입니다cbsnews.com. FBI가 이처럼 뒤늦게서야 추가 파일을 찾아낸 것은 과거 수사 기록 관리에 허점이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
NSA (국가안보국) | – 통신 감청 자료: NSA는 암살 관련 문서 중 극히 일부만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공개된 NSA 문서들은 주로 당시 신문 보도와 기관 간 서신으로서 새로운 내용은 많지 않았습니다nsa.govnsa.gov. NSA는 암살 전 오스월드의 동향과 관련해 쿠바 및 소련 외교관 대화 도청 결과를 CIA로부터 공유받았으나, NSA 자체는 직접 수집한 신호정보를 거의 공개하지 않았으며 특별한 첩보를 갖고 있지 않았음이 확인되었습니다. (NSA는 1963년 당시 국내정보 수집 권한이 제한적이었고, 관련 정보를 주로 CIA에 제공하였음.) |
국방부 등 기타 | – 대통령 일일정보보고: 국방부 산하 정보기관들을 포함한 전 정부차원의 케네디 암살 후 정보 대응 내용이 일부 문서에서 드러났습니다. 예를 들어, 케네디 암살 직후 당시 부통령에서 승계한 존슨 대통령에게 제출된 일일 정보 브리핑 자료가 이제 완전히 공개되어, 암살 직후 미국 정보당국이 어떻게 상황을 파악했는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apnews.com. 또한 이 브리핑들은 쿠바, 소련의 동향과 전 세계 미군 태세 점검 내용 등을 담고 있어 암살 직후 안보 위기 관리를 엿보게 합니다. – 기타 정보: 이 밖에 암살 관련 여러 조사 과정에서 수집되었지만 사건과 직접 관련은 없는 군사기밀들도 함께 해제되었습니다. 예컨대 1960년대 미군의 쿠바 공작 계획 문서(일명 Operation Northwoods 등)가 공개되어, 당시 합참이 쿠바 침공 명분을 만들기 위해 위장 테러를 검토한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런 자료들은 JFK 암살과 직접 관계는 없지만 케네디 시절 군·정보기관의 기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
위의 내용처럼, 최근 공개된 문서들은 오스월드와 정보기관들의 사전 접촉 및 인지 정보, 냉전 하에서 벌어진 각종 은밀한 대외공작의 실체, 그리고 암살 이후 각 기관의 대응 등을 상세히 보여줍니다. 대다수 문서는 사건 직후 윗선 보고나 수사 기록, 해외정보 전문 등으로서, 암살의 배후를 직접 지목하는 “결정적 증거”는 없었다고 평가됩니다yna.co.krapnews.com. 실제로 주요 언론과 학자들도 이번 문서에서 *“새로운 총격범을 가리키는 결정적 단서가 발견되지 않았다”*며, 오히려 케네디 시절 미국 정보기관들의 냉전 활동 전반에 관한 이해가 증진된 점을 성과로 꼽았습니다apnews.comtime.com.
그럼에도 이 문서들은 기존 공식 결론의 빈틈과 의문점을 부각시키는 여러 사실들을 담고 있습니다. 다음 절에서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자료들의 현황과 함께, 공개된 정보로 드러난 의혹의 단서들을 살펴보겠습니다.
2. 아직 공개되지 않은 문서 현황과 은폐 이유
2025년까지 공개된 자료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일부 문서는 여전히 법률적인 이유 등으로 완전공개가 보류된 상태입니다. 1992년 JFK 암살기록법에 따르면 2017년 10월까지 모든 관련 기록을 공개하도록 했으나, 국가안보 등을 이유로 일부가 연기되었습니다cbsnews.com. 2025년 3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명령으로 거의 모든 기밀정보에 대한 분류해제가 이루어졌지만cbsnews.com, 법률적으로 봉인된 기록과 개인정보 관련 문서는 별도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cbsnews.com. 남아있는 미공개 문서의 현황과 은폐 사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 법원 봉인 및 배심원 자료: 암살 사건과 관련된 일부 사법 자료(대배심 증언 등)는 법원 명령에 따라 봉인되어 있습니다. JFK 암살 관련 민감한 재판 기록이나 배심원 증언은 법적 기밀 유지가 적용되어 공개 대상에서 제외되었으며cbsnews.com, 이들은 별도의 법원 해제 절차 없이는 공개할 수 없습니다.
- 세금 정보 등 개인정보: 국세청(IRS) 관련 문서 500여 건도 아직 비공개인데, 이는 오스월드나 잭 루비 등 관련 인물들의 납세기록 등 민감한 개인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cbsnews.com. 이 문서들은 암살과 직접 관계는 없으나 개인 식별정보 보호 차원에서 제외되었으며, 현재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과 법무부가 적절한 익명화 조치 후 공개를 추진 중입니다cbsnews.com.
- 기관들의 추가 검토 요청: 2017년과 2021~22년에 CIA, FBI 등 일부 기관은 국가안보 및 외교 문제를 이유로 특정 문구와 문단의 공개를 꺼렸고, 트럼프 및 바이든 대통령은 이를 일시 수용한 바 있습니다cbsnews.com. 그러나 2022년 이후 재검토를 통해 대부분 이런 불필요한 검열이 철회되었고, 학자들은 “사소한 과잉기밀 지정의 상당 부분이 제거되었다”고 평가합니다apnews.com. 즉, 기관들이 예전에 우려했던 정보 – 예컨대, 아직 생존해 있는 해외 협조자 이름 등 – 가 이제는 시의성이 떨어져 가려낼 필요가 없어진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 남은 미공개 분량: 2022년 말 기준으로 연구자들은 약 3천~3천5백건의 파일이 전부 또는 일부 미공개로 남아 있었다고 추산했는데apnews.com, 2023년에 추가로 상당수가 공개되었습니다archives.gov. 현재 완전히 봉인 상태로 남은 기록은 법률 및 개인정보 영역에 국한되며, 향후 수 년 내 이들마저 정리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요약하면, 정보기관들이 자체 보호를 위해 숨겨온 “기밀”은 사실상 거의 공개되었고, 남은 비공개 자료는 법률적 제한 때문임을 정부는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일각에서는 일부 인물이나 기관이 명예 실추나 처벌 위험 때문에 특정 자료 공개를 막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합니다. 예컨대 CIA의 멕시코시티 책임자였던 윈스턴 스콧의 개인 메모나, CIA-DIA 간 기밀전문 등 여전히 행방이 불분명한 기록도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자료들은 정보기관의 과오나 연루 가능성을 숨기기 위해 파기되었거나 끝까지 은폐되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부의 공식 입장은, 공개 연기가 음모 은폐가 아니라 실무적 사유에 따른 것이며 2025년 현재 사건 관련 분류정보는 모두 해제되었다는 것입니다cbsnews.com. 특히 바이든 행정부는 2022년 말 대부분 기록을 공개한 데 이어 2025년 추가 공개를 완료함으로써 JFK 암살 기록의 투명성 문제는 일단락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실제로 2025년 3월 공개된 자료는 모자이크 한 점 없이 무삭제(full release) 방식이어서, 의회 직원 등 생존 인물 400여 명의 사회보장번호 등 민감정보까지 노출되는 바람에 논란이 되었고, 당국이 급히 신분보호 조치를 취하는 일도 있었습니다yna.co.kr. 이는 정부가 투명성 극대화를 표방한 결과이지만, 동시에 왜 일부 정보는 애초에 비공개였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생존자 개인정보 보호의 필요성 등).
결국 남은 의문은, 공개된 방대한 문서들 속에서 어떤 증거와 단서들이 발견되었는가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공식 입장은 “특별한 음모의 증거는 없다”는 것이지만yna.co.kr, 정밀히 들여다보면 공식설에 의문을 제기하는 여러 요소가 눈에 띕니다. 다음 장에서는 오스월드의 단독 범행설에 대한 재검토를 통해 그러한 요소들을 짚어보겠습니다.
3. 오스월드 단독 범행설의 재검토 – 총성 분석과 ‘제3의 인물’ 논쟁
JFK 암살 사건의 공식 조사결과인 **워렌위원회 보고서(1964)**와 **하원 암살조사위원회 보고서(HSCA, 1979)**는 모두 리 하비 오스월드 단독범행을 기본 전제로 했습니다. 다만 HSCA는 음향분석 결과 등을 근거로 “다수의 범인이 가담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 내려, 공식 입장에 약간의 선회를 보이기도 했습니다archives.gov. 여기서는 총성 음향 분석 결과와 목격자 증언을 중심으로 ‘오스월드 단독범’ 가설의 허구성을 살펴보겠습니다.
- 총성 횟수 및 방향 – 과학적 분석: 워렌위원회는 오스월드가 8.6초 내에 세 발을 발사했고, 두 발은 JFK에 명중, 한 발은 빗나갔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현장에서 많은 목격자들이 “총성이 네 발 들렸다”, “두 발은 거의 동시에 들렸다” 등 일치하지 않는 증언을 남겼다는 점에서 초기부터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spartacus-educational.com. 1970년대 HSCA는 달라스 경찰 무전 녹음에 남은 현장 소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네 발의 총성이 기록되었고 이 중 한 발은 앞쪽 그라시널(grassy knoll) 방향에서 나온 것으로 판단하였습니다. 그 결과 HSCA는 **“과학적 음향 증거에 비추어 둘 이상의 총격범이 존재했을 고확률”**이라고 보고했습니다archives.gov. 이 음향 분석은 통계적으로 95% 이상의 확률로 네 발의 총성이 있었다고 결론내렸고, 이 중 한 발은 배후의 교과서 창고가 아닌 앞쪽에서 발사되었음을 시사했습니다. 비록 이후 이 음향증거의 정확성을 둘러싸고 학계 논쟁이 있었지만, 최소한 세 발 이상 총격이 있었다는 점은 탄두와 상처 분석을 통해서도 반증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두 번째 총격범의 존재 가능성은 공식 인정되지 않았을 뿐, 과학적으로 완전히 배제되지 못한 채 남았습니다hindustantimes.comhindustantimes.com.
- “제3의 인물” 목격 증언: 사건 발생 직후부터 달라스 Dealey Plaza 현장에서는 여러 목격자들이 오스월드 이외의 인물을 보았다고 진술했습니다. 특히 암살 현장인 텍사스 교과서 보관소 건물에서 오스월드 외에 다른 사람이 총을 들고 있었다는 증언들이 주목됩니다. 예를 들어 **캐럴린 월터 (Carolyn Walther)**라는 여성은 퍼레이드가 시작되기 직전 **“건물 창가에 소총을 든 젊은 남자와, 그 오른쪽 뒤에 서 있는 다른 남자”**를 보았다고 진술했습니다spartacus-educational.comspartacus-educational.com. 그녀는 첫 번째 남성은 흰 셔츠에 옅은 색 머리였고, 두 번째 남성은 갈색 정장을 입은 중년으로 보였다고 구체적으로 묘사했습니다spartacus-educational.com. 또 다른 목격자인 **아놀드 로울랜드(Arnold Rowland)**도 암살 약 15분 전 해당 건물 위층 창문에 두 명의 남자가 있었으며 그 중 한 명이 소총을 들고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러한 **“창문에 두 사람이 있었다”**는 증언들은 워렌위원회에서 신빙성이 낮다며 배제되었지만, 1978년 Dallas Morning News 보도에 따르면 수사 당시 이런 증언들이 간과되었다고 지적되었습니다texashistory.unt.edu. 실제로 공식 보고서에는 이러한 불편한 증언들이 대체로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HSCA 조사 당시 해당 목격자들의 진술서가 다시 검토되었고, 일부 위원들은 **“오스월드 외 공범이 현장에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는 보충견해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 탄도 및 부상 증거의 의문점: 공식설에서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이른바 “마법의 탄환” 가설입니다. 이는 한 발의 총탄(CE399)이 케네디 대통령과 코널리 주지사를 잇달아 관통하여 총 7곳의 상처를 입혔다는 이론인데, 탄환의 궤적과 상태에 대한 의구심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단일 탄환으로 두 사람을 상처 입힐 수 있는가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고, HSCA의 총탄 재분석 결과 해당 탄환 CE399는 코널리 주지사의 일부 상처와는 무관하다는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코널리 주지사를 맞힌 탄환은 별도로 존재하며, 결국 교과서 창고에서 발사된 3발 이외에 추가 총탄이 있었을 수 있다는 의문으로 이어집니다. 비록 이는 음모론으로 치부되곤 하나, 탄도학적 재구성에서 완벽히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남아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 수사 과정의 오류와 은폐 정황: FBI와 워렌위원회의 수사과정에서 나타난 몇 가지 행태도 “단독범행” 결론을 향해 성급히 몰아간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앞서 소개한 후버 국장의 메모(“오스월드가 범인임을 대중에 확신시킬 발표가 필요”abcnews.go.com)는 공식 수사 시작 전에 결론이 정해진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남깁니다. 또한 FBI 요원 제임스 호스티에게 오스월드가 암살 직전 남겼던 경고 쪽지가 있었지만 사건 후 상부 지시로 이를 파기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CIA 역시 워렌위원회 조사 때 오스월드와 자신들의 접점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던 사실이 HSCA 및 최근 문서 공개로 드러났습니다cbsnews.comcbsnews.com. 예컨대 CIA는 오스월드가 쿠바 망명단체와 충돌했던 사건(1963년 8월 뉴올리언스에서 발생한 반체제 쿠바인 단체 DRE와의 마찰)에 자신들이 연루되어 있었음에도 그 사실을 숨겼습니다. DRE는 CIA가 자금 지원하던 단체로, 당시 오스월드와 거리에서 충돌 후 CIA 요원과 접촉했는데도, 이런 내막이 워렌위원회에 보고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런 정황들은 정보기관들이 자기관여 가능성을 피하려 일부 증거를 은폐하거나 축소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며, 결과적으로 “오스월드 혼자 저질렀다”는 결론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평가됩니다.
요약하면, 과학적 증거, 목격자 증언, 수사 과정의 행태 등 여러 측면에서 오스월드 단독 범행설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 존재합니다. 공식 입장은 여전히 “음모는 입증되지 않았다”이지만, **1979년 HSCA조차도 음모 가능성을 인정hindustantimes.com**했고, 공개 문서들에서도 이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HSCA의 결론은 *“둘 이상의 사수가 있었을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어서archives.gov, 이미 미국 정부 차원에서도 음모의 가능성은 남긴 상태인 셈입니다. 결국 **“누가 왜 JFK를 죽였는가”**라는 근본 질문은 풀리지 않았고, 이에 대한 탐구는 공개 문서들을 근거로 여러 가설을 낳았습니다. 다음 장에서는 쿠바·소련 배후설을 배제한 대신, 미국 내부에서 거론되는 유력한 암살 공모 세력들과 그 동기를 문서와 정황에 기반하여 살펴보겠습니다.
4. 미국 내 잠재적 공모 세력과 동기 분석 (쿠바·소련 제외)
케네디 암살의 배후로 역사상 여러 세력이 지목되어 왔지만, 쿠바 정부나 소련 등 외국 개입설은 앞서 본 바와 같이 근거가 부족하고 당시 소련도 음모를 의심할 정도로 황망해 했기에 제외하기로 합니다. 대신 미국 내부의 어떤 인물이나 집단이 암살을 공모했을 가능성에 주목해 보겠습니다. 특히 자주 거론되는 CIA(중앙정보국), 군부 및 군산복합체, 마피아 조직, 그리고 정치권 인사(예: 린든 B. 존슨 부통령) 등을 중심으로, 각 세력의 동기와 관련 정황을 분석합니다.
- CIA (미 중앙정보국) 가능성: CIA는 케네디 암살 음모론의 중심에 자주 서 있습니다. 그 동기로는 케네디 대통령과 CIA 간의 심각한 갈등이 먼저 꼽힙니다. 1961년 피그스만 침공 실패 후 케네디는 CIA 국장 앨런 덜레스 등 수뇌부를 경질하고 **“CIA를 천 조각으로 쪼개 바람에 흩뿌리겠다”**는 분노를 표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케네디는 쿠바, 베를린 등 민감한 문제에서 CIA의 독단적 공작을 통제하려 했고, 비밀공작 축소 및 조직 개편을 논의했습니다cbsnews.com. 공개 문서 중 슐레진저의 1961년 메모에서도 케네디가 CIA의 규모와 영향력에 우려를 가진 정황이 확인되므로, CIA로서는 조직의 권한과 존립을 위협하는 대통령이 달갑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또한 CIA는 쿠바 문제에 있어서 케네디와 여러 차례 충돌했습니다. 케네디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한 뒤 비밀리에 카스트로와 대화 채널을 모색할 때, CIA 강경파는 이를 못마땅해 했습니다. 실제로 케네디는 암살 당하기 몇 주 전 카스트로 정권과 관계개선을 타진하고 있었고, 이 사실을 나중에 안 존슨 대통령이 경악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런 평화적인 접근은 카스트로 제거를 목표로 한 CIA의 장기간 공작 노선과 정면 배치되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들을 보면 CIA 내부에 존슨 정부로 바뀐 뒤에도 쿠바 공작을 계속한 흔적이 역력하며apnews.com, CIA 요원들이 **“케네디가 죽었으니 이제 쿠바를 침공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과거 HSCA 청문회에 제출된 CIA 직원 증언). 또한 CIA는 암살 조사 과정에서 오스월드 관련 정보를 은폐하고, 자사의 쿠바 연계 인사(예: 조지 조아니데스 – 오스월드와 접촉한 쿠바망명단체 담당 요원)와 암살 사건의 연결고리를 숨겼습니다hindustantimes.com. 2025년 공개 문서 중에는 **“조아니데스가 오스월드와 연루된 반카스트로 단체에 2만5천 달러를 지원했다”**는 CIA 메모도 나타나 CIA와 오스월드 사이 간접적 연계가 있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hindustantimes.com. 종합하면 CIA 일부 세력은 케네디의 정책에 반발했고, 암살 후 진상 규명을 방해했을 개연성이 있습니다. 동기 측면에서 CIA 내 강경파 혹은 은퇴한 인사들이 암살에 개입했다면, 그것은 케네디의 대외노선 변화(냉전 완화, CIA 권한 축소)에 대한 저항이었을 것입니다. 케네디는 생전에 **“평화의 전략”**을 천명하며 1963년 미소 간 핵실험금지조약을 이끌어 냈고, 베트남에서의 제한적 철수를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암살 직전 NSAM-263으로 1965년까지 고문단 철수를 검토). 이러한 움직임들은 냉전 기득권층 – 군부, 첩보기관 – 에게는 자신들의 영향력과 예산 축소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CIA 내 일부 세력이 군 정보기관 인맥과 함께 케네디 제거를 모의했을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이는 음모론 영역이지만, CIA 관련 문건들이 줄곧 공개를 꺼려왔던 점, 그리고 1970년대 교차조사에서 거짓말을 한 정황들news9.com을 고려할 때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 군부/군산복합체 가능성: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경고했던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는 케네디 암살 배후로 자주 언급되는 세력입니다. 군부 수뇌부와 무기산업 혹은 반공 강경 정치인들이 결탁하여, 냉전 완화를 시도하던 케네디를 제거했다는 시나리오입니다. 그 근거로는 케네디가 암살 직전 베트남 철군 검토 등 동서 냉전구조를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이는 전면전을 통해 공산권을 압박해야 한다고 믿던 군부 강경파와 충돌했다는 점이 거론됩니다. 실제로 케네디는 피그스만 침공을 실패로 끝낸 후 군부의 쿠바 침략 요구를 거부했고, 쿠바 미사일 위기 때도 군의 강경책 대신 협상을 택해 핵전쟁을 피했지만 군부의 불만을 샀습니다. 1963년 6월 아메리칸대 연설에서는 소련과의 평화공존 가능성까지 언급했는데, 이 연설은 군 수뇌부에게 매우 달갑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또한 케네디는 1963년 가을, 베트남에 대한 미군 개입을 제한적으로 축소하는 국가안보각서(NSAM) 263에 서명해 미국 고문단 일부 철수를 명령했는데, 이는 전쟁 확대를 우려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암살 이후 새로 취임한 존슨 대통령은 곧 NSAM 273으로 베트남 정책을 반대로 전환하여 지상군 파병 등 전면 개입의 길을 열었습니다. 이 급격한 변화는 **“케네디만 제거하면 전쟁 확전을 막는 걸림돌이 사라진다”**는 계산이 있었다는 음모론에 불을 지폈습니다. 결국 1965년부터 미국은 대대적 베트남전에 돌입했고, 군산복합체는 막대한 전쟁 특수를 누리게 됩니다. 문서상으로 군부 개입설을 직접 뒷받침하는 증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1962년 합참이 검토한 북우(北佑) 작전 문건(Operation Northwoods 등)처럼 자국민 희생도 불사하는 극단적 대쿠바 공작안이 있었던 사실en.wikipedia.orgen.wikipedia.org은, 일부 군 수뇌부의 사고방식을 엿보게 합니다. 아이젠하워 시절 합참의장 리먼 리믹서(Lyman Lemnitzer) 장군 등 강경파는 케네디와 갈등 끝에 좌천되었지만, 군 내부의 불만은 남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달라스 현장에는 정보부대 요원들과 군인들이 배치되어 있었음에도 경호 실패를 막지 못했고, 암살 당일 이상하게도 대통령 경호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런 사후적 의문점들을 들어 군과 정보기관이 일부러 허술한 경호로 암살을 용인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습니다. 동기 측면에서 군부 혹은 군산복합체 배후설은 명확합니다. 케네디의 존재가 냉전 기조 강화를 막는 장애물이었고, 그가 사라짐으로써 베트남전 확대, 군비 경쟁 지속, 대쿠바 강경책 등이 가능해져 결과적으로 이들의 이익에 부합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대형 방산업체들은 케네디 시절 핵실험금지와 국방예산 삭감 움직임으로 위기감을 느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케네디 사후 미 국방예산과 병력은 증강되었고, 냉전은 한층 격화되었습니다. 물론 이것이 곧 음모의 증거는 아니나, 케네디의 정책 변화로 손해를 볼 집단이 누구였는지를 보여주는 정황입니다.
- 마피아 조직 개입설: 미국 **조직범죄 세력(마피아)**도 JFK 암살 음모론의 단골입니다. 1960년 대선 당시 시카고 등지의 마피아 보스들이 케네디를 은밀히 도왔다는 설이 있고, 그러나 정권 출범 후 동생인 **법무장관 로버트 F. 케네디(RFK)**가 조직범죄 소탕을 강력히 추진하면서 두 형제와 마피아의 관계는 극도로 악화되었습니다. **산토 트라피칸테 Jr.**나 카를로스 마르첼로 같은 유력 보스들은 사석에서 “케네디를 없애 버리겠다”는 협박성 발언을 했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특히 1970년대 FBI 도청 자료에 따르면, 뉴올리언스 마피아 두목 마르첼로는 “(대통령을) 죽여 버림으로써 개를 없앴다”고 자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25년 추가로 공개된 암살 관련 문서에도 **“마피아 보스들이 케네디를 처리해야 한다고 논의했다”**는 도청보고가 포함되어 있었고hindustantimes.com, 이로 미뤄 범죄 조직이 암살 공모에 관여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합니다. 또한 흥미로운 연결고리로, CIA와 마피아의 결탁이 있습니다. 1960년대 초 CIA는 쿠바 카스트로를 암살하려고 시카고 마피아 보스 샘 지앙카나와 플로리다/쿠바 마피아 보스 산토 트라피칸테 등을 고용해 독살 시도를 한 바 있습니다en.wikipedia.org. 즉 CIA-마피아 협력 관계가 존재했는데, 케네디 암살에 이들이 손잡았을 가능성이 거론됩니다. 실제로 마피아 출신 폭력배인 잭 루비가 체포된 오스월드를 사살함으로써 진실 규명의 기회를 없앤 점도 의심을 삽니다. 루비 자신은 마피아 조직원은 아니었으나 시카고 범죄자들과 교류가 있었고, 마르첼로나 지앙카나와 간접 연이 있었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동기는 충분합니다. 마피아는 쿠바 혁명으로 카지노 등 거대사업을 잃었고, 케네디 정권의 강력한 범죄단속으로 압박받고 있었습니다. 특히 RFK 법무장관은 지앙카나 등 거물급을 노리고 있었는데, 마피아 입장에선 케네디 형제를 제거해야 조직을 지킨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습니다. 케네디 암살 후 RFK는 곧 법무장관직을 사임했고, 5년 뒤 자신도 암살당했습니다. 이러한 연쇄 사건은 마피아 개입설을 더욱 자극했습니다. 1979년 HSCA는 **마피아가 암살 공모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공식 언급했으며, 구체적 주범은 특정하지 않았으나 지앙카나, 트라피칸테, 마르첼로 등을 유력 의혹 인물로 거론했습니다. 이번에 기밀이 풀린 문서들에도 **“시카고 폭력조직이 쿠바계 용병을 훈련했다”**는 기록이 있었는데, 이는 마피아와 반카스트로 세력이 연계되었음을 시사합니다hindustantimes.com. 결국 마피아+쿠바 망명자+CIA 일부가 연합하여 케네디 제거를 도모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입니다.
- 정치인 (린든 B. 존슨 등) 연루설: 마지막으로 미국 국내 정치인, 특히 케네디의 부통령이었던 **린든 B. 존슨(LBJ)**을 암살 공모자로 지목하는 설입니다. 이 가설은 텍사스 정계의 부패 네트워크와 LBJ의 개인 야망에 초점을 맞춥니다. 존슨은 암살로 대통령직을 승계함으로써 최대 수혜자가 되었고, 그를 둘러싼 텍사스 사업가들과 정치인들(예: 석유재벌 H.L. 헌트, 존슨 측근 의원들)이 음모에 가담했다는 주장입니다. 증거로는 암살 직전 존슨이 연루된 뇌물 스캔들이 있었는데, 케네디가 그를 부통령 후보에서 경질하고 재선에서 배제할 계획이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만약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존슨에게 케네디 제거는 정치생명 연장의 유일한 길이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케네디 사망 뒤 존슨은 곧장 권력을 잡고, 텍사스 재벌들이 원하는 석유 감면혜택 유지(Kennedy 제거 전에는 폐지 논의되던 이른바 석유 고갈수당)를 실행했습니다. 존슨 배후설을 뒷받침할 직접 문서는 없지만, CIA 요원 출신 E. 하워드 헌트가 **자신의 임종 직전 “암살 모의에 LBJ가 관여했다”**는 폭로를 했다는 일화가 유명합니다. 헌트는 신빙성 논란이 있지만, 달라스 현장에 있었던 미심쩍은 인물들 – 예컨대 훗날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되는 인물들 – 의 정체에 대한 의혹과 맞물려 있습니다. 또한 1960년대 FBI 국장이던 후버와 존슨은 절친한 사이였고, 후버가 암살 수사 방향을 존슨에게 맞춰 급히 종결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러한 정경 유착의 그림자 속에, LBJ가 암살 계획을 최소한 사전에 인지하고 묵인했을 수 있다는 의혹이 남아 있습니다. 동기로 보면 권력 찬탈과 정치적 생존, 그리고 텍사스 사업이익 보호 등이 거론되며, 케네디 생존 시 자신이 사법처리될까 두려웠다는 설까지 있습니다.
이 밖에도 쿠바계 반체제 망명자들, 극우 비밀결사 단체들(예: KKK나 민병대), 심지어 연방준비제도까지 음모론 목록에 오르지만, 문서 기반으로 어느 정도 합리적 추론이 가능한 범위는 위에서 다룬 정도입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들 중 직접 “배후 세력”을 지목한 것은 없지만, 각 세력이 암살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하거나 배제하는 간접정황들은 상당히 드러났습니다. 정리하면:
- CIA는 케네디와 대립했고, 사건 전후 행적으로 볼 때 의혹 1순위입니다. 그러나 CIA 조직 전체라기보다 험프리 지도하의 쿠바 공작팀 등 일부 파벌의 독단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 군부/군산복합체는 직접 증거는 없으나 케네디 제거로 가장 큰 전략적 이익을 보았다는 점에서 유력한 배후로 거론됩니다.
- 마피아는 암살 실행 인력을 제공할 수 있는 집단으로, CIA나 반카스트로 세력과의 동맹 관계 속에 움직였을 수 있습니다.
- **정치권 내부자(LBJ 등)**는 암살 음모를 묵인하거나 사후 은폐에 협조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제,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가장 개연성 높은 배후 세력과 그 동기를 종합해보겠습니다.
5. 결론: 가장 유력한 배후 세력과 암살 동기
지금까지의 문서와 증거를 종합할 때, JFK 암살의 배후로서 단일한 조직이나 인물이 아닌 여러 세력이 복합적으로 얽힌 음모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특히 CIA의 일부 세력을 중심으로, 반공 강경파 군인들, 반(反)캐스트로 쿠바 망명자들, 그리고 마피아 조직까지 연결된 비공식 연합이 암살을 공모했을 시나리오가 가장 설득력 있다는 견해가 부상하고 있습니다hindustantimes.com. 이를 흔히 “국내 공모론” 혹은 “공동 모의(convergence of interests)” 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서로 동기가 일치했던 집단들이 암묵적으로 역할을 분담하여 케네디를 제거했다는 가설입니다.
가장 유력한 주체로 지목되는 것은 결국 CIA의 비밀작전 세력입니다. CIA는 당시 쿠바 문제와 베트남, 그리고 소련과의 데탕트 등 정책에서 케네디와 가장 심각한 마찰을 빚고 있었고, 암살 이후 여러 의혹의 중심에 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들도 CIA가 오스월드와 얽힌 정황을 숨긴 점cbsnews.com, 암살 직후에도 자체 공작을 지속한 점apnews.com 등을 보여줌으로써, CIA가 사건의 그림자 속에 존재하고 있었음을 드러냅니다.
다만 CIA 단독으로 대통령 암살을 실행하기에는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마피아와 반쿠바 망명자들의 실행력을 이용하고 군부와 정치권 강경파의 묵인을 얻는 방식으로 음모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hindustantimes.com. 예컨대 마피아 출신 사격수나 쿠바인 용병이 총격을 가했고, 이후 마피아 연계자인 루비가 오스월드를 제거하며 입을 막는 한편, CIA 출신 요원들이 조사방해 공작을 했다는 시나리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연방수사국(FBI) 수장 후버와 존슨 대통령 등이 알면서도 묵인하거나 사후에 서둘러 마무리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동기는 무엇이겠습니까? 여러 세력이 공모했다면 각각의 동기가 맞아떨어지는 “공유 지점”이 있어야 합니다. 케네디는 그런 점에서 공통의 표적이 될 수 있었습니다:
- CIA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쪼개려는 대통령을 제거함으로써 조직 보존과 쿠바 정책 변경을 꾀할 동기가 있었습니다.
- 군부와 군산복합체는 베트남전 확대와 냉전 지속을 위해 유화적 지도자의 교체를 원했을 수 있습니다.
- 마피아는 자신들을 탄압하는 정권을 끝내고, 나아가 쿠바 재진출의 꿈을 꾸며 CIA와 이해가 일치했습니다 (카스트로를 제거하면 쿠바의 카지노 사업 부활 가능).
- 반캐스트로 쿠바인들은 “배신자” 케네디에 대한 원한(피그스만 지원중단)과 고향 탈환 의지로 암살에 가담할 의사가 있었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각 세력의 동기가 일치점에서 만나 케네디라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데 모아졌다면, 그것이 바로 가장 강력한 암살 배후 시나리오일 것입니다. 최근 공개 문서들은 이런 가설을 명백히 입증하지는 못했지만, 그 퍼즐 조각들을 상당 부분 제공했습니다. 예를 들어 2025년 문서 중 CIA 요원이 반캐스트로 단체에 자금을 댄 사실hindustantimes.com, 마피아 보스들이 케네디 제거를 논의한 도청hindustantimes.com, CIA와 군이 쿠바 침공 계획을 공유한 내용 등이 그것입니다. 이를 연결하면, 1963년 가을 쿠바 정권을 전복하고 베트남 개입을 유지하려는 세력들이 협력하여 케네디를 암살했을 가능성이 부상합니다.
결론적으로,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의 배후로는 미국 내 강경 기득권 연합세력이 가장 유력해 보입니다. 그 핵심에는 CIA의 비밀작전 네트워크가 있고, 여기에 조직범죄 세력과 망명 쿠바인 용병, 그리고 군 정보기관 내 공모자들이 가세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들은 각자의 이해관계가 케네디의 제거로 수렴되었으며, 암살의 동기는 권력 유지와 정책 노선 변경으로 집약됩니다. 케네디가 제거됨으로써 냉전의 방향은 그들이 원하던 대로 바뀌었고, 이는 곧 동기가 실현된 것입니다.
물론 이 결론은 여전히 완전한 증거보다는 정황과 개연성에 근거한 것입니다. 아직도 풀리지 않은 퍼즐 조각이 남아 있고, 일부 문서는 앞으로도 밝혀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60여 년간 드러난 사실들을 통해 볼 때, “오스월드 혼자 우발적으로 벌인 일”이라는 공식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지며, 대신 체계적 음모가 있었을 개연성이 문서로서도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역사는 종종 복잡한 진실을 오랜 시간 숨기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드러나는 방향으로 갑니다. 이번에 공개된 JFK 암살 문서들도 앞으로 더 많은 연구와 교차분석을 통해 진실의 윤곽을 선명하게 밝혀줄 것이며, 언젠가는 이 비극적인 사건의 전모가 낱낱이 규명되길 기대합니다.
참고 자료:
-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JFK 암살 기록 자료실 – 2025년 및 2023년 추가문서 공개 목록archives.govcbsnews.com
- AP통신 보도, “새로 기밀 해제된 JFK 암살 문서들, CIA 관련 정보 다수 – 음모의 직접 증거는 없어”apnews.comapnews.com
- ABC뉴스 보도, “케네디 암살 파일 공개… 후버 국장 ‘오스월드가 범인임을 납득시켜야’ 메모”abcnews.go.com
- Hindustan Times 요약, “2025년 JFK 파일의 가장 충격적인 내용” (CIA의 오스월드 감시 및 묵살, 둘째 총격수 증거, 마피아 연루 등)hindustantimes.comhindustantimes.com
- Dallas Morning News (1978) 등재, “조사에서 간과된 목격자들” (두 명의 사수 목격 증언 기사)texashistory.unt.edu
- HSCA 최종보고서 발췌, “과학적 증거로 두 명의 총격범 존재 가능성 – 95% 이상의 고확률”archives.gov
- 연합뉴스, “봉인 풀린 JFK암살 문서, 음모론 근거는 없고 개인정보만…” (2025.3.21)yna.co.kr